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 ,대마도 역사 연표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 ,대마도 역사 연표

Tsushima Island is originally our land. A historical chronicle of Tsushima Island.

대마도(쓰시마섬)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위치하며, 부산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가까운 곳입니다.역사적으로 양측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다음은 대마도의 고대부터 현재까지 주요 역사 연표입니다.

대마도 역사 연표 Tsushima Island Historical Chronology

시대 연도 (근사치)주요 사건
고대기원전 ~ 6세기신석기 시대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활발했으며,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 왜의 일부로 등장합니다. 일본 창세 신화에도 등장합니다.
393년왜구가 신라의 궁성을 침략하는 등 왜구의 활동이 기록되었습니다.
660년대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군 지원을 위해 일본군이 파견될 때 대마도는 중요한 경유지였습니다.
8세기~일본의 지방 행정 구역인 '쓰시마국'이 설치되고, 일본 야마토 정권의 느슨한 복속 관계 하에 있었습니다.
중세13~14세기일본 내부의 혼란으로 인해 대마도 주민들이 왜구(해적)가 되어 한반도 해안을 약탈하는 경우가 빈번해졌습니다.
1389년고려의 박위가 대마도를 정벌하여 왜구의 선박 300여 척을 부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419년조선 세종대왕의 명으로 이종무 장군이 대규모 대마도 정벌을 단행하여 왜구의 근거지를 토벌했습니다.
근세15세기~조선은 대마도주에게 무역을 허가하고 구휼미를 제공하며 유화책을 폈고,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본토 사이의 중개 무역지 역할을 했습니다. 대마도주는 조선으로부터 관직을 받는 '수직왜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1592년임진왜란 발발 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군이 대마도를 거쳐 한반도를 침략했습니다.
17세기~조선은 왜관을 통해 대일 무역을 관리했고, 대마도는 무역 창구로서 경제적 이득을 얻었습니다.
근현대1877년일본은 강화도조약 직후 '대마번'을 공식적으로 나가사키현에 편입시켜 일본의 국유지로 만들었습니다.
1945년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마도는 일본 영토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対馬市)에 속하며, 인구 감소 등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대마도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양국의 외교적, 상업적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대마도의 고대사부터 현재까지 역사 연표


대마도(쓰시마섬)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위치하여 고대부터 두 지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음은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주요 역사 연표입니다.

1. 고대 (선사시대 ~ 12세기)기원전 ~ 기원후 초: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해로의 요충지로, 벼농사, 청동기, 철기 문화가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되었습니다.

 66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이 나·당 연합군에 패배한 후, 일본(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공격에 대비해 대마도에 가네다성(金田城)을 축조하고 방어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ⵔ 6세기 ~ 12세기: 일본의 율령제 하에서 쓰시마국(対馬国)으로 편성되었으며, 아비루 가문이 통치했습니다.

2. 중세 (13세기 ~ 16세기)1246년: 

소(宗, Sō) 가문이 아비루 가문을 타도하고 대마도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어 이후 메이지 유신 전까지 섬을 지배하게 됩니다.

 1274년 & 1281년: 원나라(몽골)의 일본 정벌 당시 1, 2차 공격의 첫 상륙지가 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ⵔ 고려 말 ~ 조선 초: 대마도가 왜구의 근거지가 되자 한국 왕조에 의한 대마도 정벌이 단행되었습니다.1389년: 고려 창왕 때 박위의 정벌.
ⵔ 1396년: 조선 태조 때 김사형의 정벌.
ⵔ 1419년: 조선 세종 때 이종무의 정벌(기해동정). 이후 대마도는 조선의 번속국임을 자처하며 무역 혜택을 받았습니다.
ⵔ 1592년 ~ 1598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최전방 보급 기지 및 침략 거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3. 근세 (17세기 ~ 19세기 중반)1607년: 

전쟁 후 단절되었던 조일 국교를 회복하기 위해 조선이 조선통신사를 파견했으며,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가 중간에서 중요한 중재 역할을 했습니다.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설치되어 대마도가 조선과의 독점 무역 및 외교 창구 역할을 수행하며 번영했습니다.
ⵔ 1861년: 러시아 군함 포사드닉호가 대마도 이모자키를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국제적인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4. 근대 및 현대 (19세기 후반 ~ 현재)1871년: 

일본의 폐번치현으로 쓰시마번이 폐지되고 이즈하라현이 설치되었습니다.
ⵔ 1876년: 강화도 조약 직후 일본 정부는 대마도를 나가사키현에 정식 편입시켰습니다.
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대마도 근해에서 쓰시마 해전이 발생하여 일본 함대가 러시아 발틱 함대를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ⵔ 1931년: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혜옹주가 대마도주의 후손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하였습니다.
ⵔ 현재: 행정구역상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対馬市)에 속하며,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로서 관광 및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남아 있습니다


대마도와 한국과의 역사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해왔으며, 특히 조선 시대에는 한국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던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 (역사적 영유권 기록)

한국의 고대 문헌과 지도에는 대마도를 한국 영토로 인식한 기록이 다수 존재합니다. 
 신라 시대: 《세종실록》에는 "대마도는 본래 계림(신라)에 속한 우리 땅"이라는 명백한 기록이 있으며, 고려 시대 문헌인 《대주편년략》에도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牧)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ⵔ 조선 시대: 1530년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고지도에는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표시되어 있으며, 조선 정부는 이곳을 경상도 관할로 간주했습니다.

2. 세 차례의 대마도 정벌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한반도를 침탈하던 왜구의 본거지를 소탕하기 위해 세 차례의 정벌이 단행되었습니다. 

 제1차(1389년): 고려 창왕 때 박위가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 선박 300척을 파괴했습니다.
ⵔ 제2차(1396년): 조선 태조 때 김사형이 정벌에 나섰습니다.
ⵔ 제3차(1419년): 세종 1년, 이종무가 이끈 가장 유명한 정벌(기해동정)입니다. 이 정벌 이후 대마도주는 조선에 항복하고 신하로서 조공을 바치는 번속국(藩屬國) 관계를 맺었습니다.



3. 조선의 번속국으로서의 역할

대마도는 일본의 영주(다이묘)이면서 동시에 조선 국왕으로부터 관직과 도장을 받는 조선의 외신(外臣)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외교 중개: 임진왜란 이후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대마도주가 중간에서 안내와 중재를 맡았습니다.
ⵔ 경제적 의존: 농사가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던 대마도는 조선으로부터 식량을 공급받고 삼포(부산포, 제포, 염포)를 통해 독점적인 무역 혜택을 누렸습니다.


4. 근대 이후의 변화메이지 유신(1871년): 

일본이 폐번치현을 단행하며 대마번을 폐지하고 일본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편입시키면서 한국과의 특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환 요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이며 350년 전 일본에 의해 탈취된 땅"이라며 일본에 공식적인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으나, 부산에서 약 50km 거리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한국과 가장 밀접한 일본 영토로 남아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일본에 대마도(쓰시마섬) 반환을 수차례 요구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일본에 대마도(쓰시마섬) 반환을 수차례 요구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일본에 대마도(쓰시마섬) 반환을 수차례 요구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일본에 대마도(쓰시마섬) 반환을 수차례 요구했으며, 1948년 8월 첫 기자회견에서 대일 관계 중대 발언으로 요구했고, 1949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재차 요구하는 등 공식적인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독도 문제와 더불어 일제 식민지배의 잔재 청산과 영토 주권 수호의 일환으로 추진된 주장입니다.


 주요 기록 및 내용:1948년 8월 18~19일: 대한민국 건국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발언을 함.
 1949년 신년 기자회견: 새해에도 대마도 반환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하게 주장함.
 배경: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토였으며, 조선시대부터 우리 영토였음을 강조하며 일본의 불법 점유를 주장했음.
 목적: 일본과의 강화 회의 참여를 앞두고 영토 문제에 대한 선제적 입장을 밝히고, 식민지 청산의 일환으로 반환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당시의 신문 기사 및 관련 자료를 통해 확인 가능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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