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 및 생체 실험, Unit 731 and Human Experim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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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및 생체 실험, Unit 731 and Human Experimentation 731부대(七三一部隊, 일본어: 第731部隊, 영어: Unit 731)는 일본 제국 육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하얼빈 인근 핑팡(平房) 지역에서 운영한 생물·화학전 연구 및 인체 실험 부대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 범죄 중 하나로 꼽히며, 나치 독일의 인체실험과 함께 국제적으로 강력히 비난받고 있습니다. 731부대 및 생체 실험 일본 제국 육군 소속의 비밀 생물전 연구개발 기관인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국 하얼빈에 주둔하며 비인도적인 생체 실험과 세균전 무기 개발을 자행한 악명 높은 부대입니다.  731부대 주요 활동 및 만행 생체 실험 대상 : 주로 중국인, 조선인(한국인), 구소련인 포로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들은 '마루타(丸太, 통나무)'라고 불렸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이었습니다. 실험 내용 : 치사율이 높고 전염성이 강한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등 각종 세균 및 독가스를 이용한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세균을 감염시키거나 독가스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페스트로 살해된 시신이나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의 전신이 병에 담겨있는 등 끔찍한 기록들이 발견되었습니다. 731부대  목적 : 강력한 세균 무기를 개발하고 그 효능을 검증하여 실제 전쟁에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피해 규모: 중국 학계는 731부대 등 일본 세균전 부대에 의해 생체실험으로 살해된 인원이 1만 명 이상이며, 생물학 무기로 인한 총 희생자는 3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희생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인적사항이 확인된 일부 희생자들은 항일 애국지사로 밝혀졌습니다.  731부대 전후 은폐 및 증언 일본군은 패전 직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시설을 폭파하고 실험 대상자들을 학살했습니다. 부대원들은 귀국 후 비밀유지 서약에 따라 침묵을 지키거나 과거를 숨기고 사회로 복귀하는 경...

삼광 작전(三光作戦) Three Alls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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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광 작전(三光作戦) Three Alls Policy 삼광작전(三光作戦, 산코 작전, Sankō Sakusen)”은 일본군이 중일전쟁(1937~1945) 중에 중국 화북 지역(특히 산시성, 허베이성, 산둥성 일대)에서 전개한 초토화 작전으로, 잔혹함으로 악명 높았던 작전입니다. 이 삼광 작전 (三光作戦)은 중일 전쟁(中日戰爭)중 가장 비참했던 3대 사건들 즉 , 난징 대학살 (南京大虐殺), 731부대 및 생체 실험과 함께 알려진 참혹의 전쟁사입니다. 산코 작전 (산코우사쿠센)이란, 중일 전쟁기에 일본군이 중국 북부(화북)에서 실시한,소토 작전으로 일본군측의 호칭은 귀멸 작전(진메츠사쿠센)이며, 중국측에서 그 잔학함으로부터 명명한 호칭이며, 일본군측이 부르던 명칭은 진메츠 즉 신멸 작전이라고 합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1940년 일본군육군 제1군 참모장으로 있던 다나카 류키치(田中隆吉) 가 내린 "적의 근거지를 섬멸소탕하여 적에게 있어 장래 생존할 능력을 뿌리 뽑아라(敵根拠地ヲ 燼滅掃蕩シ敵ヲシテ将来生存スル能ハザルニ至ラシム)"로 밝히고 있으며 레퍼런스는 일본 역사학자 카사하라 토쿠시(笠原十九司)의 일본군의 치안전과 삼광작전(日本軍の治安戦と三光作戦)을 들고 있네요. 삼광 작전(三光作戦) Three Alls Policy 삼광(三光)은 다음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살광 (샤구안) : 다 죽인다, 殺光(シャーグアン):殺し尽くす 소광 (샤오구안) : 다 불태운다, 焼光(シャオグアン):焼き尽くす 창광(치안안): 다 뺏는다, 搶光(チアングアン):奪い尽くす 일본군이 중일전쟁 에서 벌인 제노사이드 이자 초토화 작전 이름입니다. 삼광작전'은 중국어로 三光政策 (Sānguāng Zhèngcè, 싼광정처) 또는 三光作战 (Sānguāng Zuòzhàn, 싼광쭤잔) 이라고 합니다. 이 작전은 게릴라와 일반 주민의 구별 없이 행해져, 광범위한 지역에서 마을을 소멸시켜 이른바 '무인지구'를 설정하는 등, 매우 비인간적인 행위를 수반했습니다. 많은...

전쟁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중일 전쟁(中日戰爭)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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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중일 전쟁(中日戰爭) 사건들 중일 전쟁(中日戰爭)은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의 중국 대륙을 침략하면서 시작됩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대규모 전쟁을 말하는데 , 중국에서는 항일전쟁(중국어 간체자: 抗日战争, 정체자: 抗日戰爭, 병음: Kàngrì Zhànzhēng)이라 부릅니다. 반면 영미권에서는 제2차 중일 전쟁(영어: Second Sino-Japanese War)이라고 부릅니다.중일 전쟁은 20세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중일 전쟁(中日戰爭) 사건들 중일전쟁은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비참한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일본군에 의한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의 생체 실험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로 인해 그 참혹함이 극에 달했던 전쟁으로 참혹한 전쟁사를 보여줍니다.  가장 비참했던 중일 전쟁(中日戰爭) 사건들 난징 대학살 (南京大虐殺): 1937년 12월, 일본군이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후 벌인 대규모 학살 사건입니다. 약 6주 동안 전쟁 포로는 물론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되거나 강간당했습니다. 당시 난징에 있던 독일 나치 인사들조차 일본군의 잔혹함에 경악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만행이 극심했습니다. 731부대 및 생체 실험 : 일본 제국 육군 소속의 비밀 부대인 731부대는 중국과 만주 지역에서 포로들을 대상으로 비인도적인 생체 실험을 자행했습니다. 세균전 연구를 목적으로 마루타(나무토막)라고 불린 희생자들에게 각종 질병을 감염시키거나 극한의 환경에 노출시키는 등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삼광 작전 (三光作戦):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태우고, 모조리 약탈한다"는 의미의 삼광 작전을 펼쳐 민간인 거주 지역을 초토화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마을이 파괴되고 막대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막대한 인명 피해: 중일전쟁 기간 동안 중국인 사망자는 군인...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과 한족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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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과 한족, Taiwanese natives 타이완 원주민은 근현대에 한족이 이주하기 전부터 타이완섬에 거주해 온 오스트로네시아족 계통의 토착 민족 집단을 말합니다. 이들은 오늘날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마다가스카르, 오세아니아의 사람들과 언어적, 유전적 연관성을 공유합니다.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은 오래 전부터  대만에 살고 있던 오스트로네시아계의 원주민족을 말합니다.한족(漢族)이 대만으로 이주하기  이전부터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 부족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모두 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부족입니다.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과 한족과의 역사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의 주요 특징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인구 : 현재 타이완 전체 인구의 약 2.3%를 차지하며, 인구수는 화롄현과 타이둥현 지역이 가장 많습니다.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부족 : 타이완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원주민 부족은 16개입니다.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언어 :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고유 언어인 '대만 제어(Formosan languages)'를 사용하지만, 점차 중국어(만다린어)가 공용어가 되면서 원주민 언어 화자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  역사적 구분 한족 이주민들은 거주 지역에 따라 원주민을 두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평포번(平埔蕃): 평지 지역에 거주하며 한족 문화에 상당 부분 동화된 원주민. 고산번(高山蕃) / 생번(生蕃): 고산 지역에 거주하며 전통 문화를 비교적 잘 보존해 온 원주민. 오늘날 공식 인정된 16개 부족은 대부분 고산족에 해당합니다.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  공식 인정 부족 (일부) 아미족 (Amis): 인구가 가장 많으며, 타이완 전역에 걸쳐 분포합니다. 아타얄족 (Atayal): 주로 북부 내륙 지방에 거주합니다. 부눈족 (Bunun): 섬 중앙 산맥 지역에 넓게 퍼져 살았습니다....

제1차 상하이 사변(第一次上海事變) ,1·28 항전,상하이 사변 (上海事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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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상하이 사변 (第一次上海事變)  ,1·28 항전(1932년) 이 전쟁의 정확한 명칭 영어로는 First Shanghai Incident 또는 January 28 Incident로 부릅니다. 제1차 상하이 사변의 명칭은 상하이 사변(上海事變), 또는 '일이팔 사건'입니다.  1932년 1월 28일에 사건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중국은 이를 '일이팔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상하이 사변 (上海事變) :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상하이와 군사적 충돌을 의미하는 '사변'을 합친 명칭입니다. 일이팔 사건 (一二八事件) : 1월 28일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의미로, 중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입니다. 제1차 상하이 사변 : 1937년에 일어난 제2차 상하이 사변과 구분하기 위해 '제1차'를 붙여 부르기도 합니다.  제1차 상하이 사변(第一次上海事變) ,1·28 항전,상하이 사변 (上海事變) 기간: 1932년 1월 28일 ~ 3월 3일 배경: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중국 내 거센 항일 운동이 벌어지자, 일본 측이 일본인 승려 구타 사건을 조작하여 이를 빌미로 상하이 국제 공동조계 주변에서 무력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결과: 약 5주간의 전투 끝에 양국 간의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상하이의 자베이(閘北) 구역 등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1937년 전면전의 전초전 성격을 가집니다.  제1차 상하이 사변은 1932년 1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제국 해군 육전대와 중화민국군(주로 제19로군) 사이에 벌어진 무력 충돌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1·28 항전'이라고 부릅니다.  제1차 상하이 사변 주요 내용 기간: 1932년 1월 28일 ~ 1932년 5월 5일 배경: 1931년 만주사변으로 만주를 침공한 일본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자, 이목을 분산시키고 상하이 조계지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무력 충돌을 유도했습니다.  일본인 승려...